“중국기업이 M&A를 하는 최대 목표는 기술 습득입니다. 중국은 과학기술 육성을 위해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하고 있는데, 가장 실용적인 방법인 M&A를 통해서 첨단 기술이 딸려오는 것을 원하고 있어요.”
이종일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장은 단기적인 투자수익보다는 첨단기술 습득이 중국기업들의 해외기업 사냥의 최대 목표라고 밝혔다. 중국 자산거래소(CBEX)의 한국법인인 투웬디원플라자 유미선 CSO(Chief Strategy Officer)는 “최근 중국기업들의 의뢰가 부쩍 늘었다”며 “주로 IT, 부동산, 의료 등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한다.
유 CSO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IT업체의 경우 게임, 인터넷, 포털업체 등을 중심으로 한 의뢰가 들어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 기업들은 기술제휴와 합작방안 등을 논의하다 인수 쪽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상하이자동차와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쌍용자동차도 이러한 경우다.
구조조정 기업 대상 M&A형 투자 늘어
중국의 대한국투자는 1999년 2700만 달러에서 하이디스 M&A가 이뤄진 2002년에는 2억4900만 달러까지 증가했다.
조현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중국정부가 기업의 해외진출을 전략적으로 장려하고 있어 향후 중국기업의 한국 투자도 상당히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장차 중국의 대한 투자는 한국의 구조조정 대상기업을 겨냥한 M&A형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기업의 M&A는 그 동안 주로 일본기업에 치우쳐 있었다. 그 동안 중국에 넘어간 일본기업도 7개 이상이고, 지속적으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올해 베이징의 한 투자회사가 현지에서 개최한 일본기업 인수를 위한 세미나에서 약 30여 개의 중국기업들이 참가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만큼 선진기술과 브랜드를 갖고 있는 기업의 인수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
선진기업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 활용
중국기업들이 일본을 비롯한 한국기업의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선진기업의 기술력과 브랜드파워를 한꺼번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일 관장은 “첨단 기술에 있어 까다롭고 경계가 심한 일본 기업보다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첨단 기술이 중국에 너무 쉽게 새나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중국 상하이 푸둥신구에 본사가 있는 더룽 국제전략투자그룹 산하 경제연구소는 인력 200명을 가진 최대의 인수합병 전문회사로 모두 경제 경영학 분야 석사 이상이다. M&A 관련 최고의 두뇌가 모인 이 회사에서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기업 인수합병을 진행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이 자금난으로 기업구조조정 중일 경우 중국의 투자전문기업의 사정권 안에 들어간다.
인수합병 열풍 계속된다
중국 정부의 해외투자 정책으로 중국기업의 해외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중국은 해외투자보다 해외자본유치 규모가 큰 나라이다. 중국은 외국인직접투자 유치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외국기업의 투자가 활발하다. 하지만 해외자본 유치를 통해 급성장한 중국이 이제는 해외투자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종일 코트라 베이징 무역관장은 “중국은 이제 최고의 기술을 살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외에 투자할 의지와 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해외투자규모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지역은 중국보다 개발 속도가 뒤떨어진 동남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이고 러시아와 몽골 등에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막강한 자본력의 증가와 함께 2000년 이후부터는 한국과 일본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기술격차 점점 줄어들어
하지만 이에 따른 사회적인 반감과 부작용 또한 있다. 먼저 BOE그룹이 하이닉스의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인수했을 때 하청기지로만 보던 중국이 한국기업을 매수합병한 데 대한 자존심 문제 또한 없지 않았다. 중국기업으로의 매각과 관련 쌍용자동차의 한 직원도 “솔직히 자존심 상하는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추격에 대한 우려가 더 큰 요인이다. 첨단 기술의 경우 중국과의 격차가 5년에 불과한 현실에서 IT와 자동차를 주력으로 하는 국내 산업의 현실에서 중국에게 추격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특히 중국기업들이 한국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목적은 ‘선진기술을 단번에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유출에 대한 법제화 시급
불법적인 기술유출 문제가 최근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이종일 관장은 “일본은 중국과의 수교가 우리보다 20년이나 빨랐고 경제규모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지만 고급기술 유출에 대해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첨단기술 유출문제에 대해 심하게 표현하면 무대책일 정도”라고 지적했다.
현대시스콤이 CDMA기술을 중국에 유출해 논란을 빚고 있는 것도 첨단기술 유출 문제에 안이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하이닉스 반도체 인수합병이 논의됐을 때 강력히 반발했던 것도 이 정도의 기술이 넘어가면 머지않아 중국기업이 삼성전자를 쫓아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었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이 자금력이 부족해 첨단기술을 중국에 헐값으로 넘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기술유출에 대한 법제화도 시급한 상황이다.
‘만만디’ vs ‘빨리빨리’
유미선 CSO는 중국 기업과의 협상시 가장 힘든 점이 바로 ‘만만디’라고 꼽았다.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사람과 ‘만만디’를 외치는 중국 사람이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결국 손해 보는 측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대우차 매각이나 하이닉스반도체 하이디스의 매각 등에서 보면 한군데 기업만 우선협상권을 줘서 진행을 하다 보면 매각하는 기업의 정보와 비밀만 노출되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의 인수협상 진행과정만 보더라도 몇 년째 지리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유 CSO는 기획을 통한 치밀한 인수합병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제품이나 기업만 갖고 협상에 들어가서는 실패한다고 봐요. 펀드까지도 조성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제품 하나가 아니라 철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을 거쳐서 종합선물세트를 만들어가야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이종일 관장은 “만만디는 중국인들의 기본적인 협상전략인데, 우리가 약자 입장이다 보니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럴수록 ‘안 해도 그만’이라는 배짱으로 대중국 전략에서 중국보다 더 만만디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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