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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일반

투자대가들은 위기의 순간 어떻게 움직였을까

by 잠실돼지2 200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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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의 경우에는 주가 3원리를 이해하면 끝! #
# 파생의 경우에는 기본 구조를 이해하면 끝! #
# 로직을 시스템화 시켰을 경우 살아남으면 진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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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대가들은 위기의 순간 어떻게 움직였을까



미국 발 금융위기에 글로벌 증시가 몇 년 치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대공황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얘기도 들린다.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때 투자자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본능적으로 주식과 펀드를 최대한 빨리 처분하려고 한다.

위기가 기회라는 목소리도 동시에 나오고 있지만 불안감에 휩싸인 투자자들에겐 와 닿는 듯 하지 않다. 싼 값에 매수해 비싼 값에 매도한다는 투자원칙은 익히 알고 있지만 행동은 또 다른 문제다. 최근 1~2년간 증시 흐름만 봐도 시장은 투자원칙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증시가 활황이었던 지난해 말 주식에 대한 수요가 넘쳐난 반면,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요즘 주식을 매수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불안할 때 한발 물러서는 것은 인간으로서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이 불안할수록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위대한 투자가로 꼽히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남들이 감정에 휩싸일 때 이성적인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경기가 호황일 때보다 불황일 때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사람들이 불안한 투자심리에 휩싸여 주식을 앞다투어 팔 때 매수에 나섰다. 이른바 ‘역발상 투자’다. 역발상 투자는 본성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힘들지만 상식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워렌 버핏 저가에 사 오래 보유하라

얼마 전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골드만삭스의 우선주에 투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대서특필 되었다. 세계 금융시장을 선도했던 투자은행들이 금융불안으로 위기에 직면한 시점이었기에, ‘가치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그의 투자소식은 더욱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워렌 버핏은 해당기업의 실적이 좋으면 회사의 내재가치가 상승하고, 이는 결국 주가에 반영된다는 것을 지론으로 삼는다. 그는 특히 월트 디즈니,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워싱턴포스트, 코카콜라 등 수익이 꾸준한 우량기업에 집중했다. 그에게 업종자체의 불황 혹은 약세장으로 인한 주가하락은 중요하지 않다. 기업의 본질적 가치가 그러한 요인으로 인해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1973년 1차 오일쇼크와 1987년 블랙먼데이 때에도 그는 자신의 확고한 투자철학을 고수했다. 1차 오일쇼크 때 워렌 버핏이 1,100만 달러에 매입한 워싱턴포스트 주식 170만주의 가치는 지난해 말 14억 달러로 기록되었다. 무려 매입가격의 117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또한 블랙먼데이 직후 13억 달러를 들여 사들인 코카콜라의 주식 가치는 20여 년 후인 지난해 말 120억 달러로 늘어났다. 실적이 부진한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그의 투자원칙은 IT버블 시기를 지나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모두가 IT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하던 그 때, 워렌 버핏은 인터넷 관련주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결국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았던 IT업종들의 주가 버블은 붕괴 되었고, 워렌 버핏은 승자가 되었다.

존 템플턴
비관론이 최고조에 달할 때가 기회다


미국 월가에서 가장 존경 받는 투자가 중 한 명인 존 템플턴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1939년 존 템플턴은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1929년부터 계속된 10여 년 간의 대공황이 이제 끝나게 됐다고 생각했고, 증권회사에 전화를 걸어 뉴욕증시에서 1달러 이하에 거래되는 모든 종목을 100달러어치씩 사달라고 주문했다. 결국 104개 종목에 1만 달러를 투자하게 되었고, 평균 4년 정도 보유한 후 이들 주식을 모두 팔았다. 그가 처음 투자했던 1만 달러는 4년 뒤 4만 달러가 되었다. 또한 아시아 경제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1997~1998년 그는 한국과 싱가포르, 호주 등에 과감히 투자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존 템플턴의 역발상 투자 철학을 잘 표현한 말이 있다. 바로 ‘비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의 원칙(the Principle of maximum pessimism)’이다. 그는 1995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투자 철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다. “사람들은 늘 어느 곳의 전망이 좋으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올바른 질문은 어느 곳의 전망이 최악인가를 묻는 것이다. 주식을 사야 할 때는 시장에 비관론이 극도에 달했을 때이기 때문이다. 주식은 가능하면 기업의 가치에 비해 주가가 형편없이 낮을 때 사야 한다. 주식을 정상적인 가격보다 싸게 사려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포에 사로잡혀 비관론에 빠져 있을 때를 찾아야 한다.”

피터 린치
모두가 걱정할 때 사라


피터 린치의 ‘칵테일파티론’을 들어보았는가? 칵테일파티에 참석한 주식전문가에게 모두가 주식에 대한 걱정을 늘어 놓는다면, 그 때가 바로 주식을 사들일 기회라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만들어낸 피터 린치는 마젤란펀드를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로 일궈낸 역사상 가장 성공한 펀드매니저이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있어 의지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위기가 지나고 나면 다음 위기가 올 때 반드시 저렴한 주식을 사들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주가가 떨어질 때 버틸 수 있는 의지가 없으면, 공포심리가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 주식을 팔아버리고 싶은 욕구가 든다는 것이다. 피터 린치는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주식시장이 다른 투자대상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지난 70년 동안에도 수익률이 10% 이상 급락한 경우가 40번, 그 중 13번은 33%나 하락했었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주가가 하락할 때 또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확신을 스스로 갖기 위해서였다.

피터 린치는 1982년 경기침체로 자동차 판매가 급격히 감소하던 시기에 ‘누구에게나 죽음이 찾아오듯이 사람들은 다시 자동차를 사게 될 것이다’라는 명제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곧 파산할 것이라는 우려로 주당 2달러에 거래되던 크라이슬러 주식을 사 모아 자신이 운용하던 마젤란펀드에 편입하기 시작했다. 그 후 8개월 만에 크라이슬러 주가는 2배로 뛰었다. 마젤란펀드가 1981년 일반인들에게 판매되기 시작한 무렵 펀드의 총 자산규모는 1억 달러에 불과했다. 펀드 내 비중이 가장 높았던 크라이슬러 주식 덕분에 마젤란펀드의 자산규모는 1983년 말 16억 달러로 늘어났다. 자신의 기본 철학에 충실해 위기를 견뎌낸 그의 의지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리자청
진화타겁(鎭火打劫) - 불 난 틈을 타 훔쳐라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 재신(財神)’ ‘홍콩인들의 경제 교과서’……
모두 리자청을 상징하는 수식어다. 홍콩인들의 ‘경제 교과서’로 불리는 리자청은 통신회사 허치슨왐포아를 비롯해 창장실업, 홍콩텔레콤, 홍콩전력 등 460여 개의 기업체를 거느린 아시아 최고 부호 중 한 사람이다. 리자청의 투자 전략은 손자병법의 ‘진화타겁(鎭火打劫)’이다. 즉 불이 나서 경황이 없을 때 물건을 도둑질한다는 뜻으로 남의 위기상황을 이용하여 승리를 거두라는 의미이다.

그가 사업을 확장한 시기는 대부분 경기 침체기였다. 리자청은 홍콩 경제가 최악으로 치달을 1970년대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홍콩전력 지분율을 30% 이상 끌어올려 최대 주주로 부상한 시기도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홍콩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였다. 경기침체와 이라크전, 사스 등으로 항공 수요가 급감한 2003년 당시에는 경영 위기에 놓여있던 에어캐나다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의 투자전략은 최악의 순간에 좋은 물건을 싸게 사고, 경기가 좋아질 때를 기다리다 최고의 순간에 비싸게 파는 다른 장기투자 대가들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실제 2007년 10월 중국증시가 활황일 당시 리자청은 남방항공 주식을 주당 12~13 홍콩달러에 매각해 400%의 수익률을 거두었다.
그가 남방항공 주식을 매수할 당시의 주가는 주당 2~3 홍콩 달러에 불과했다.

*미래에셋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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